매경데일리

서울 서대문구 ‘이본느모건’ 이명성 대표 "루네빌 자수를 통해 만나는 내면의 아름다움"

이경아 | 기사입력 2024/11/05 [09:30]

서울 서대문구 ‘이본느모건’ 이명성 대표 "루네빌 자수를 통해 만나는 내면의 아름다움"

이경아 | 입력 : 2024/11/05 [09:30]

루네빌 자수(Lunéville embroidery)는 18세기 프랑스 루네빌 지역에서 시작된 전통적인 자수 기법이다. 이 기법은 "탬버 후크"라는 작은 바늘을 사용해 천에 구슬, 스팽글, 실 등을 얹어 정교한 무늬를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고급스러운 질감과 화려한 디자인을 표현하는 데 뛰어나며, 주로 패션 하우스와 고급 의류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루네빌 자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럽과 전 세계의 많은 디자이너와 공예가들이 사랑하는 기법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공방에서는 고유의 색감을 가진 실과 천, 그리고 손끝에서 탄생하는 예술적인 자수가 만나, 각기 다른 이야기를 엮어내고 있다. 자수의 고유한 아름다움과 그 안에 담긴 감성은, 단순한 수공예를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서울 서대문구 ‘이본느모건’ 이명성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이본느모건] 이명성 대표    

 

 

Q. 귀 사의 설립 취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A. 이본느모건 자수 스튜디오의 브랜드 스토리는 "당신의 마음속에 아름다움이 넘친다는 것을 잘 알아요"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름다움을 보고, 그 감정이나 느낌을 표현하는 것에 종종 두려움을 느낍니다. 창의적인 직업이 아닌 경우, "무언가를 표현한다"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인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일은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며, 작더라도 자신만의 감정을 외부로 드러내는 경험은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게 해줍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 취향이 반영될 것입니다. 취향이 반영된 일상은 자존감을 높여주고, 더 풍성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선물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여러분이 소박한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 되고자 합니다.

 

2013, 공방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온전히 저 자신을 위해 시작했습니다. 잠시 쉬었던 그림 작업을 다시 하고 싶었고, 이전에 미술 학원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취미 미술 수업을 진행하면서, 여유가 생기면 다시 작가로 돌아가려는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공방에서 수업을 하면서 얻는 보람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제 계획은 조금씩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11년 동안 약 4500명의 학생들을 만나왔습니다. 스튜디오로 찾아오는 분들, 기업에서 초대되어 만난 분들, 에어비앤비를 통해 만난 해외 수강생들까지. 작은 공방이지만 많은 분들과 소통하며, 지금도 그들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희 수업 방식은 최소한의 매뉴얼을 기반으로, 각 학생의 취향을 최대한 반영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자수 도안을 3가지 정도로 제시하면, 자수실은 본인이 직접 선택해야 합니다. 원하는 도안이 있다면 수업이 가능한 방식으로 수정하여 진행하면서, 응용법을 최대한 많이 알려드려 각자의 스타일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취향을 표현하는 첫걸음을 함께 내딛는 것, 그 시작을 함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재는 개인 작업과 기업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며, 온오프라인으로 학생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단기로 취미 수업을 진행했다면, 지금은 9회 이상의 수업으로 보다 진지한 태도로 작업물을 만들어 보고 싶은 분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작업을 공유하며, 학생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제 작은 소망입니다.

 

 

Q. 귀 사의 주요 프로그램 분야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오.

 

A. 저희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수업을 진행하며, 온라인으로 자수 키트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저희 수업은 아직 국내에서는 생소한 루네빌 자수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루네빌 자수는 주로 명품 브랜드에서 비즈나 스팽글을 장식할 때 활용되는 특별한 자수 기법 중 하나입니다. 보통 프랑스에서 배울 수 있지만, 저는 독학을 통해 루네빌 자수를 익히고, 이를 수업과 제작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루네빌 자수는 루네빌 후크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실을 고정시키는 기법으로, 열 손가락을 모두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원데이 클래스에서는 배우기 어려운 기법입니다. 그래서 금손을 자랑하는 분들도 의외로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으실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연습을 꾸준히 하시면 충분히 익힐 수 있도록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프랑스에서 정통으로 배우지는 않았기 때문에, 제 스타일로 루네빌 자수를 표현하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전통적인 루네빌 자수가 클래식한 느낌이라면, 저희는 좀 더 모던하고 한국적인 스타일을 반영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수업에서 사용되는 도안의 키 컬러는 청화대 단청의 컬러를 사용하고, 도안의 중심 디자인은 단청 문양이나 기와 라인, 한복의 곡선 등을 토대로 작업했습니다.

 

그러나 국내에는 이 기법에 필요한 재료가 부족하여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해외에서 재료를 수입하는 것이 더 쉬웠지만, 저는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수업을 진행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약 30종의 천을 테스트한 결과, 의외로 한복 재료가 루네빌 자수에 매우 적합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어, 옥사나 한복에서 자주 사용되는 노방에도 비즈와 스팽글을 더해 작업하면 매우 아름다운 결과물이 나옵니다.

 

현재 저희 수업에는 주로 취미로 자수를 배우고자 하는 분들, 자신의 작업에 루네빌 자수를 활용하고자 하는 작가들, 패션학과 학생들이나 관련 분야 종사자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손끝이 예민하고 섬세한 작업을 잘해, 빠르게 배우고 그 결과물이 매우 완성도가 높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앞으로 많은 분들이 루네빌 자수를 배우고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또한, 2022년부터는 패션 자수 테크니션 1, 2, 3민간 자격증을 등록하여, 루네빌 자수를 좀 더 전문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아직 국내에는 없는 자수 분야를 더욱 넓혀가고자 합니다.

 

 

Q. 귀 사만의 특징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오.

 

A. 이본느모건은 패션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수 스튜디오입니다. 20248월에는 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했고, 그 이전에는 패션쇼에 올라가는 쇼피스를 제작하거나, 차별화된 디자인을 원하는 패션학과 졸업생들과 의상을 함께 작업하기도 했습니다.

 

자수는 종종 장식적인 요소로만 인식되거나 내구성이 약하다는 이유로 그 자체의 가치를 인정받기 힘든 분야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수 작업의 결과물을 액자로 완성하거나 오브제로 마무리하여 자수 자체도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패션쇼에 등장하는 쇼피스를 제작하거나, 무대 의상 의뢰, 비즈 소품 제작 등 다양한 제작 의뢰를 받고 있습니다.

 

어느 날, 저희 공방에 방문한 한 학생과 고객분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이본느모건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곳만의 색깔이 있어요.”

이 말처럼, 저희만의 독특한 느낌은 색감과 다양한 질감에서 나오는 디테일에 있습니다. 자수는 손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각 작업마다 고유의 손맛이 담깁니다. 저희는 기계가 만든 깔끔한, 기계적인 자수보다는, 빈티지한 색감과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사용하는 믹스 매치 스타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광 비즈 옆에는 반짝이는 스팽글을, 그 옆에는 보슬보슬한 울사와 도톰한 실을 더해 디테일을 풍성하게 만듭니다. 이런 질감의 대조는 재료들 사이에 작은 공간감을 형성하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느낌의 디테일을 만들어냅니다. 이런 방식으로 작업을 하면, 자수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입체적이고 예술적인 감각을 지닌 작품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Q. 귀 사를 운영하는 데 있어 대표자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 사례나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자유롭게 말씀해 주십시오.

 

A. 얼마 전,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학생이 저희 루네빌 자수 수료증반에 등록해 주셨습니다. 첫 수업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학생이 루네빌 자수가 한국 전통 자수라고 생각하고 등록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마도 도안이 전통적인 느낌을 주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 전통 자수로 오해하신 것 같아요. 그런데 그 학생이 저희 루네빌 자수를 선택한 이유가 바로 한국의 루네빌 자수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저의 마음을 잘 이해해 주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정말 기뻤습니다.

 

더 놀라운 일은, 그 학생이 개인 SNS에 올린 게시물을 보고 한국 여행을 계획 중인 외국인 친구가 수업을 등록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루네빌 자수가 해외로 점차 퍼져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고, 앞으로 더 많은 해외 분들이 한국적인 루네빌 자수를 배우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이본느모건] 대표 작품    

 

 

Q. 향후 목표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A. 저의 첫 번째 목표는 개인 작품 활동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목표는 함께 작업할 수 있는 학생들을 양성하여, 한국에서 자수 분야의 수준을 높이고, 자수의 영역을 더욱 넓히는 것입니다. 11년 동안 공방을 운영해오면서 작품 활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구매로 이어질 수 있는 시장이 있어야 작가가 지속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편집몰 사이트 구축으로, 저희 학생들을 비롯해 디테일이 풍부한 실로 작업하는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판매할 수 있는 편집몰을 기획한 것입니다. 이 사이트는 해외 결제도 가능하게 할 예정이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저희 작품이 소개되고, 알려지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 개인 작업에만 집중하려면 공방 운영보다는 개인 작업에만 몰두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매번 성장하는 학생들과 그들의 삶이 확장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수업을 계속 이어가야겠다는 의지가 더욱 강해집니다. 자수 작업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기 때문에 혼자서 작업하기엔 때로는 벅찰 때도 많습니다. 그런 순간에 학생들과 협업하여 대형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저의 큰 바람 중 하나입니다.

 

가까운 목표로는, 2025년에는 학생들과 함께 단체전을 열어보는 것입니다. 꼭 프로페셔널한 작가가 되는 것이 목표는 아니지만, 하나의 작업물을 기획하고 테스트하며 완성해 나가는 기쁨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죠. 조금 느리지만, 단단히 쌓아가며 우리나라에도 이런 전시가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Q. 독자들에게 전할 말

 

A. 저는 꼭 저희 스튜디오에서 무언가를 배우지 않더라도, 손으로 만드는 취미는 하나쯤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요즘처럼 모바일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더욱 손으로 직접 만지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만드는 일은 보통 손과 눈을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집중하기가 쉽습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콘텐츠들, 핸드폰 화면이나 멈춤 없이 볼 수 있는 OTT 콘텐츠를 잠시 내려놓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혹은 백색 소음 속에서 손과 눈을 움직이며 조용히 집중해 보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이는 어른들을 위한 작은 촉감 놀이이자 일상 속에서 필요할 수 있는 명상 같은 순간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점점 더 아날로그와 멀어져 가는 일상 속에서, 단순한 손작업을 시작으로, 다양한 취미를 즐기다 보면 일상이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그런 작은 취미들이 삶에 여유와 기쁨을 더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고 믿어요.